[김희권의 문화·예술 돋보기] 타인 저작물 짜깁기 능력 출중하면 무죄, 부족하면 유죄?
[김희권의 문화·예술 돋보기] 타인 저작물 짜깁기 능력 출중하면 무죄, 부족하면 유죄?
  • 김희권 문화예술학 박사
  • 승인 2019.03.24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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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적용에 혼란 없도록 '하나의 기준·해석틀' 제시해야


창작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 괴로움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하곤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비전공자들도 각종 창작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시대다. 그만큼 타인의 작품보다 눈에 띄고 독창적인 창작물을 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작품을 전혀 모방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창작을 했더라도, 혹시 모를 유사한 기존 작품이 있는지 꼭 확인해 봐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은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기보다 기존 연구나 작품을 바탕으로 참고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혹은 작곡을 하든 무엇을 창작하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디지털 작업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씩 제작하는 것보다 타인의 이미지나 영상을 가져와 이를 변형하면서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다만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분명 저작권 침해다.

 

그런데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창작으로 볼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만약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 이미지나 영상 등의 편집 능력이 뛰어나 원래의 형태를 전부 없애버렸다면 무죄고 반대로 편집 능력이 부족해 원래의 형태가 조금 남아있다면 유죄라는 의미인가?

 

현행법에서 타인 저작물을 무단 이용하는 경우, 원저작물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거나 변형을 했어도 창작성이 가미되지 않으면, 복제권 침해가 성립한다. 또 타인 저작물을 무단 변경해 원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에 손상을 가했다면, 동일성유지권 침해가 된다. 만약 허락을 받지 않다면, 타인의 저작물에 창작성을 부가해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었더라도 원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위 판결에서 "어떤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였더라도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 저작물이 되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고 판시한 것이다. 왜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 판결은 야구 게임 캐릭터에 관한 것인데, 대법원은 "'신야구'라는 캐릭터가 신체 부위를 2등신으로 나누어 머리 크기를 과장하고 다른 부위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한편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리를 생략하되 발을 실제 비율보다 크게 표현한 점 등에서 '실황야구' 캐릭터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이는 그 전부터 흔히 사용되던 것이고 얼굴 표정이나 신발의 구체적인 디자인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아 '실황야구' 캐릭터의 복제물이나 2차적 저작물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와 비슷한 다른 사례를 보면, 대법원은 '석굴암' 관련 소설을 두고 어문저작물이 문제 된 사건에서도 "석굴암에 관한 '서적'은 석굴암의 이념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고 있고 석굴암의 창건 동기 등에 관한 서술은 보조적 주제에 불과하지만, 석굴암에 관한 '소설'의 주제는 김대성이 삼국통일 과정에서 야기된 혼란과 반목을 종교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것이어서 그 장르와 주체 및 전체적인 구성이 같거나 유사하다고 할 수 없는 점, 서적과 소설은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배경과 김대성 설화 및 석굴암이라는 소재를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에 관계되는 단어나 구성에 공통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부득이한 점 등 제반 사정들을 고려하면, 소설이 서적에 대한 복제권이나 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4다14375 판결)"고 판시했다.

 

 

위 판결문 사례들 중 특히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였더라도"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한다. 즉 허락을 받지 않고 타인 저작물을 내 창작 활동에 이용했더라도 그 결과물이 타인의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면, 사실상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저작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법은 '표현'된 결과만을 보호하므로 그 과정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인가? 한편 학자들은 이와 같은 저작재산권 침해 여부 판단과 관련해 저작권법에 등장하지도 않는 '의거'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기존 저작물의 표현을 인식하고 그것을 이용한다는 의사를 가진 상태에서 실제로 이용'했는지 또한 판단 요건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창작'이란 무엇일까?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이 확립한 견해다. 그런데 위 사례들의 판결에 따르면, 남의 것을 모방했어도 그것을 많이 변형하거나 나만의 창작적 요소를 많이 부가했다면, 창작성으로 인정된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혹여 남의 것을 모방 했지만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모방·변형하고 새로운 창작적 요소를 많이 더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는 결국 타인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변형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겠다는 저작권법의 취지와 규정에 배치되는 해석이다. 오히려 '허락을 받지 않고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한다는 점을 인식한 상태'에서 '그 저작물을 복제 또는 2차적 저작물작성 등의 방법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어쩌면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는 그리 대단하거나 고차원적인 작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예술 전공자는 학교에서 창작을 하는 방법을 배우고, 무수한 훈련을 통해 그 기술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주된 일이다. 그런 예술 전공자의 과정에서도 모방을 '완벽하게'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인간이 기존에 창작했던 것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시대에서 그리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법은 인간이 만든 제도일 뿐이다. 그 자체로 이미 불완전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통찰할 수 없다. 그래서 결과를 두고 재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법과 제도는 최소한 '행위자 내심의 동기와 행위의 결과가 일치'하는 방향을 지향하면서 만들고 적용해야 한다. 그 해석도 마찬가지다. 해산에 비유할만큼 만들기 어려운 창작물을 내놓은 원저작자를 충분히 보호하려면, 해석에 따라 이리 저리 달라질 수 있다는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법을 적용하는 현장에서 혼란스럽지 않도록 현행법에 맞는 '하나의 기준·해석틀'을 제시하는 역할에 더욱 충실할 필요가 있다.

 


김희권 문화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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