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술은 우리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가?
[기자수첩] 기술은 우리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가?
  • 박진혁 기자
  • 승인 2018.05.19 0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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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트리뷴=박진혁 기자] 얼마 전, 시중의 한 은행이 모바일 뱅킹이 점점 대세가 되고, 잇따라 인터넷 전문은행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규모 점포 폐쇄를 단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직원들을 감원하면서 기존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모바일 뱅킹과 소위 '고객가치센터'라는 콜센터를 통해 충분히 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조치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모바일 혁신 전략'이라고 선언했다.

 

 

얼핏 보면, 단순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점점 인간의 일자리가 온라인과 기계 등으로 대체되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구조조정 혹은 고객 서비스 지원 축소일 뿐이다. 오히려 기술혁명 때문에 노동과 일자리가 점점 사라진다는 프레임을 씌운 눈속임으로 볼 여지마저 있다. 당장 해당 은행의 노조는 "시중은행 라이센스로 계속 영업은 하면서도 보편적인 금융 서비스 제공이라는 기능을 사실상 포기하고, 일반고객과 부자고객을 차별하겠다는 무서운 전략"이라며 반발했다. 대규모 지점 폐쇄가 실행되면, 광역시나 도 단위에 은행의 점포가 단 한 곳도 없는 지역이 줄줄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당 은행은 '80% 지점 폐쇄'라는 국내 시중은행 사상 전례가 없는 실험을 하겠다는 셈이다.

 

이것이 수익성을 위한 사업폐지 수순인지 혹은 수익이 잘 나오지 않는 지역의 지점은 폐쇄하고 돈 되는 지역의 부자고객만 상대하겠다는 전략인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우리는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인간의 노동과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점을 악용해 사라지지 않을 노동조차 사라질 노동으로 손쉽게 바꿔치기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4차 산업혁명을 핑계로 나가달라는 고용인이 말이 그만큼 노동자들에게 너무나 그럴싸한 핑계로 들린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그냥 시장에 맡겨두기엔 너무 많은 실업자가 쉽게 양산된다.

 

물론 은행의 경우, 모바일 시대가 열리고 비대면 채널이 발달하면서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지점과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시중은행이라는 타이틀과 그로 인한 혜택은 계속 유지하려 하면서도, 80%의 지점 폐쇄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ATM(Automated Teller Machine) 등 기기와 콜센터 인력만으로 고객에 대한 중요 서비스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은행이 그동안 기계를 사용해 손쉽게 얻어 온 수수료 부분도 한 번쯤 생각해볼 부분이다. 은행 직원 수를 크게 줄이게 한 ATM 기기의 사용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은행의 창구에 직접 가서 직원 서비스를 받으면, 수수료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객이 직접 은행이 설치한 ATM 기기를 학습하고 매뉴얼에 따라 일정한 노동력을 제공한 뒤 스스로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이처럼 고객에게 일정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방식인데도 ATM을 이용하는 고객은 오히려 수수료를 더 내야 한다. 순번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한다고 해도, 사실상 ATM으로는 단순 입출금 등을 주로 이용하며 이용 고객이 특히 젊은 층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옹색한 변명일 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ATM 기술 개발 비용까지 이용자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서비스 이용에 대한 수수료는 따로 요구하면서도 정작 고객이 투입한 노동력에 대해서는 대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매우 일방적인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은행의 직원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 노동을 ATM이라는 기기를 이용해 고객이 대신 노동하도록 바꿔치기한 셈이다. 따라서 위 사안에서는 노동이 기술로 인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직원의 노동에서 고객의 노동으로 주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기술혁명으로 인해 인간의 노동과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심각한 왜곡이자 위험한 발상이다.

 

이와 같은 위험한 노동 바꿔치기 행태가 요즘 들어 은행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횡행하고 있다. 하나같이 '기술혁명으로 인해 사라지는 노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당장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이 주문을 받는 대신, 설치된 키오스크 기기를 통해 고객이 직접 화면을 터치해 주문하는 시스템으로 점차 바뀌는 중이다.

 

신촌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박진혁 기자

 

이 또한 은행의 ATM기기 사례처럼 고객에게 노동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도 고객의 노동에 대한 대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고객이 직접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 기기로 주문을 하는 가격과 직원에게 다가가 "이거 주세요"하고 편하게 주문을 하는 경우의 가격 차이는 전혀 없다. 단지 작고 단순한 노동일지라도, 이렇게 일상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고객이 노동자의 일을 조금씩 대신하는 것이 반복돼 사회적인 습관으로 익숙해지면, 고객이 제공하는 작은 노동과 기계가 대신하는 큰 노동이 더해져 기존의 인간 노동자가 해 온 일자리는 더 빨리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은 분명 노동의 형태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면, 그 변화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그리고 더욱 진지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변화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박진혁 기자 pjh@ktrib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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