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기차 시대, 혼란 막으려면 준비 서둘러야
[기자수첩] 전기차 시대, 혼란 막으려면 준비 서둘러야
  • 박경준 기자
  • 승인 2018.06.01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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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트리뷴=박경준 기자]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했다. 테슬라 등 해외 자동차 시장에서 이미 전기차-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의 현대-기아차도 한 번 충전으로 390㎞를 달리는 장거리 전기차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얼마 전 한국GM 노사분쟁에서도 협상 안건의 중요 주제가 전기차 생산 시설 유치와 유지였다. 이처럼 전기차 시대의 본격 경쟁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우리 정부도 신설한 4차산업위원회 등과 별개로 전기차 관련 부처를 새로 신설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기차가 표준이 되는 전기차 시대가 본격 시작되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매우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다른 국가들과 달리 준비가 부족하다. 아직도 많은 국민이 전기차를 떠올리면서 하이브리드카 몇 종을 떠올리는 게 현실이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전기차 시대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노동 위험 시대'다. 전기차를 만드는 부품은 적게는 15개 정도 뿐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1,800개 가까운 부품을 이용해 내연기관차를 만들어 온 지금의 자동차 분야에서 더는 그만한 일손이 필요 없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구조여서 그 위험의 정도가 더욱 클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전기차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자율주행차의 시대로 급속하게 진입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되면 우선 운전기사가 필요 없어진다. 택시기사, 버스 기사, 화물차 운송 기사 등이 사라지면 그들이 멀리 가다가 식사를 위해 들르던 식당의 수요도,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출발하던 모텔 등의 수요도 모두 사라진다.

또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되면 센서 감지에 의해 사고가 원천적으로 줄어든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지상파 TV 등을 통해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건너는 고슴도치를 감지하고 멈춰서는 휴머니즘 가득한 자율주행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한 CF가 전파를 타고 있다. 이로 인해 산업 사고, 출퇴근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자동차 사고 처리가 업무의 대부분인 보험 산업 또한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산업이 연쇄적으로 다른 산업이 사라지는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 노동 위험 사회를 불러올 것이라는 점은 이처럼 명백하다.

그렇다면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우리나라의 준비는 어떠할까.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사실상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결국 일자리를 잃는 수많은 사람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전기차, 인공지능 등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일은 잠시 늦추거나 뒷순위로 미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미래를 대비하면서 수많은 미래형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대비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실제로 세계 국가들의 전기차 시대 준비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수많은 우수 자동차 브랜드를 가지고 내연기관차 시장을 주도하는 독일의 경우, 얼마 전 재선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가 '2037년까지 인간의 모든 운전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내연기관차 시대의 1등 국가가 준비 없이 자연스럽게 전기차 시대의 1등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인도,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서는 이미 전기자동차가 법제화됐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시진핑의 진두지휘 아래 전기자동차 산업과 AI 시대 도약을 통해서 G2국가에서 G1국가로 올라서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 중국은 사실상 전략적으로 전기차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차를 현실화하고 더 앞선 미래를 위해 수소차 관련 산업 준비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내연기관차 시대에 미국과 일본, 프랑스와 독일 등에 밀렸지만, 전기차로 재편될 기술 경쟁에서는 뒤쳐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지켜보던 프랑스와 영국도 부랴부랴 내연기관차 금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사실 독일과 미국, 일본과 프랑스, 대한민국 등 내연기관차의 우수한 브랜드가 있고 자동차 제조 기술이 발달한 나라들은 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기술과 산업의 규모가 발달한 때문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그만큼 새로운 기술-산업의 도입을 늦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전기차 발전의 핵심적 인프라 요소로 꼽히는 배터리 충전소의 경우 놀랍게도 내연기관차 제조 기술이 우수한 국가들에서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전기차 충전소의 수가 매우 적다는 사실이 외신을 통해서도 보도된 바 있다.

 

 

지난 2006년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크리스 페인 감독은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가 1996년 출시한 전기차 'EV1'의 험로를 영상에 담았다. 전기차 EV1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에서 페인 감독은 경제적 가치가 있고 미래 지향적이었던 EV1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핵심적인 이유를 짚어낸다.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거대 정유사와 엔진 오일 제조회사, 그리고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해당 산업의 노동자들이 합심해 정치권에 로비를 펼친 결과, 배기가스 규제법을 철회하게 하고 친환경 차 지원책을 막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너럴모터스는 결국 1999년까지 캘리포니아에서만 총 1,117대나 팔렸던 EV1를 수거해 폐차장에 보내야 했다.

이후 페인 감독은 5년 뒤인 2011년 전기차를 주제로 한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내놓았다. '전기차의 복수(Revenge of the Electric Car)'라는 영화다. GM의 흑역사를 바탕으로 테슬라라는 복수의 화신이 등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과정을 통해 테슬라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는 일약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며 미래 자동차 산업계의 거두로 등극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 전기차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정치적인 요인을 통해 봐도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을 막는다는 정치적인 캐치프레이즈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중국은 지난 2014년에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지금까지 시장구조 재편을 거치며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고 향후 수소차 경쟁 시대마저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더는 늦지 않게 전기차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핵심은 역시 불가피할 노동의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분명한 것은 위에서 본 대로 전기차 시대 노동의 위험이 단지 자동차 산업에만 미치는 단순한 일자리 위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박경준 기자 pkj@ktrib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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