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강제적 이주와 난민, 그리고 일자리
[특별기고] 강제적 이주와 난민, 그리고 일자리
  • 이호택 피난처 대표
  • 승인 2018.06.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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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트리뷴=특별기고] 

 

1. 이주와 난민


전 세계 75억 인구의 3.3%인 2억5,000만 정도가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타국에서 이주민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이주민을 만나는 경험도, 이주민이 되는 경험도 낯선 일이 아니다. 만일 국제 이주민들이 하나의 나라를 만든다면,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5위의 인구 대국이 된다. 또 그 나라의 연간 인구 증가율은 1%대인 세계 인구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3%대가 될 것이다. 브렉시트 사건과 함께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세계가 이 거대한 나라의 출현에 더욱 경계심을 갖게 된 것은 이제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제이주를 막으려는 그 어떤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인구의 국제이동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개인의 인권보호 필요 및 국제사회의 책임이라는 요구 앞에서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으니, 바로 난민보호의 영역이다. 모든 사람은 '각국의 영역 내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있을 뿐 아니라 '자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있고(세계 인권선언 제13조), 또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누릴 권리'가 있다(세계 인권선언 제14조). '난민'은 박해로부터 국적국 안에 보호받을 곳이 없어서 타국으로 출국해 피난처를 찾고 국제사회의 보호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년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난민보호를 국제사회의 책임으로 인식해 유엔난민기구(UNHCR)를 설립하고, '난민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을 채택했다. 1951년 난민협약 제1조A 제2항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합리적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해,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또는 종전의 상주국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상주국에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로 정의했다. 이 협약의 정의에 부합하는 난민을 '협약난민'(Convention Refugee)이라 하고, UNHCR이 그 위임된 권한에 근거해 더욱 폭넓게 보호하고 있는 난민을 '위임 난민'(Mandate Refugee)이라 한다. 취업, 결혼, 유학 등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이주하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지만, 전쟁이나 박해와 같은 폭력 때문에 강제적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국제난민 또한 많이 증가하고 있다. 

 

 

2. 한국의 난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의 수가 지난 1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해 총인구의 3.4%인 171만명이 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난민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나요?', '난민이 왜 한국까지 오죠?', '탈북자도 난민인가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이다. 답을 하자면, 한국에도 난민들이 있다. 대부분은 선택이 아니라 졸지에 한국까지 오게 된 경우다. 위험을 피해 황급히 탈출하는 난민들에게는 선택의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가야만 한다. 심지어 북한에 가는 줄 알고 왔는데, 남한이더라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송환되는 경우,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제법상 난민으로 볼 수도 있으나, 우리 헌법은 북한지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난민이 아니라 국민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우리나라는 난민협약에 가입돼있다. 2013년 7월1일 발효된 아시아 최초의 독립 난민법도 가지고 있다. 또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재정착 난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난민인정률은 낮고, 아직 난민보호에 관한 국제사회의 짐을 충분히 나눠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난민보호'란 난민들을 박해당할 우려가 있는 본국으로 강제송환하지 않고, 박해가 소멸해 자발적으로 본국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며 체류와 취업을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난민요건을 심사해 난민지위를 인정하고, 전쟁난민 등이 난민요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인도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난민신청자에 대해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정한 체류와 취업을 허용하는 것이다.

 

난민협약에 가입한 1992년 이래  국내에서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접수된 난민신청은 총 32,733건이다. 2017년에만 총 9,942건의 난민신청이 있었다. 거의 1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한국에 보호 요청을 한 것이다. 이처럼 난민신청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2013년부터는 매년 두 배 가까이 되는 증가 폭을 보였다. 특히 지난 2017년은 매월 평균 829건의 난민신청이 전국에서 접수됐고, 이는 그 전년도 평균인 월 629건에 비해 200건이나 더 늘어난 수치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는 2017년 한 해 동안 총 19,628건의 난민신청이 접수됐다. 다만 우리나라는 평균 5.5~6% 정도인 600여명에 대해서만 난민지위가 인정되고, 평균 8~8.9%인 980여명 정도에게 인도적 체류가 허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청자의 약 15%에게만 보호가 제공되는 셈이다. 이는 전 세계 평균 난민인정율인 27%정도와 보호율인 59%정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3. 난민의 일자리


모든 이주자의 주된 이주 목적은 바로 '노동'이다. 그들의 자아실현, 권리보장, 생존, 자립, 정착, 기여 등에 가장 핵심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은 결국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국제이주'가 출입국에 관한 법률에 위반되므로 그들의 노동은 비정규적인 요소로 본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들의 노동은 결코 범죄가 아니며,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긍정적 기능과 작용이 더 많다. 이주자들은 체류국의 사회보장시스템을 악용하거나 부당하게 사회복지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이주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자리를 찾거나 피난처를 찾아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지역주민들이 일하기 꺼리는 3D업종에서 주로 일한다.

 

이처럼 엄연히 사회에 존재하고 지역사회에도 기여하는 이주자의 모든 노동을 법적-사회적-정치적 장벽으로 억제하려 한다면, 그 사회의 진정한 잠재력은 결코 발현될 수 없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오히려 비정규 노동자인 이주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데 큰 관심을 쏟는 이유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도 이러한 난민에게 노동을 통해서 생존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해줘야 한다. 특히 강제적 이주의 경우에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이주인 경우가 많은데, 출신국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보다 세심한 보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난민에 관한 일자리 법제를 살펴보면, 난민법 제30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난민인정자는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난민협약에 따른 처우를 받는다'고 하고, 난민협약은 제3장에서 '난민에게 임금노동, 자영업, 자유업과 같은 유급직업에 종사할 권리를 인정'한다. 따라서 출입국관리법은 난민인정자에게 전반적 취업이 가능한 F2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있는바, 난민인정자는 외국인에게 제한되는 일부 전문직을 제외한 모든 유급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

 

또한, 난민법은 난민신청자에 대해 신청 후 6개월이 지나면 허가를 받아 취업할 수 있도록 했고(법 제40조 제2항), 이러한 취업허가는 난민불인정 결정에 대한 소송절차가 진행 중인 난민신청자(법 제2조 제4호)에 대해서도 부여될 수 있다. 소송 중인 신청자나 재신청 혹은 남용적 신청을 이유로 간이절차에 의한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생계비지원이나, 주거, 의료, 교육 등의 지원이 제한될 수 있지만, 취업에 대해 제한은 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난민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허가를 받기 위해 고용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 난민신청자 및 인도적 체류자는 본래 취업 가능한 체류자격이 아닌 G1체류자격이지만,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통해 취업허가를 받는다. 하지만 보통 사업주들은 취업자격이 없는 G1소지자들과 고용계약을 체결하거나 사업자등록증을 복사해주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다. 또 G1체류자격에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의 방법으로 취업을 허가받는 경우, 허가받는 취업이 단순노무에 국한돼 근무 가능한 직종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어려움도 있다. 따라서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의 방식으로 취업을 허가할 것이 아니라 취업이 가능한 다른 체류자격을 부여하거나, 출입국관리법 제23조의 체류자격 구분에 따른 취업활동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취업을 허가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취업 이외의 자영업에 대해서는 난민인정자뿐 아니라 난민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도 난민협약 제18조에 따라 수공예품제조, 민속식당, 농사, 장사, 머리땋기 등 난민들의 고유한 지식과 문화를 활용해 소규모 투자에 의한 자영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외국인이 자영업을 위한 사업자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에 제한이 없는 체류자격 즉 F-2(거주), 재외동포(F-4), 영주(F-5), 결혼이민(F-6) 등의 소지자여야 한다. 또는 D8 외국인투자자로서 1억원 이상을 법인에 투자하거나, D9 무역경영자로서 3억원 이상을 개인투자해야 하는데, 난민들이 이러한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난민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소규모 투자에 의한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자영업을 포함한 유급직업이 가능한 별도의 체류자격을 만들어 부여하거나, 취업허가만으로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4. 환영하는 사회, 기여하는 난민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들은 가난하고 위험한 사람들이며, 기여도 없이 선진국의 복지 혜택만을 누리려는 '무임승차자'라는 인식이 있다. 이들을 수용하고 처우를 개선하면, 더욱 많은 사람이 유입되고 정주하게 돼 국민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고 노동시장은 교란되며, 게토화(Ghetto化)할 수 있으므로 사회불안요소가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최근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사건과 사회통합에 실패한 일부 이주자들을 통해 이주와 난민에 대한 공포로 변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국제이주는 돌이키고 중단시킬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이다. 난민 발생도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다. 아무리 국경의 담을 높이 쌓아도 난민들의 국경을 넘는 필사의 탈출을 막을 길은 없다. 그렇다고 더 높은 장벽을 쌓는 것은 결코 인간의 길이 아니다.

 

해결책은 이주자들과 더불어 살길을 찾는 것이다. 난민들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갖지 못한 자산이 있을 수 있다. 일자리를 포함한 적절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기본적 필요를 스스로 채우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장기간의 국가지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난민들이 정착에 실패하고 사회갈등의 요인이 된 유럽 일부 국가의 사회복지형 정착모델보다는 전 세계 난민의 70~80%가량을 수용하고 3개월이라는 짧은 정부지원을 했지만, '난민은 부담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사회 전반의 인식을 일구어낸 미국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 비결은 민관협력을 통한 취업의 자립 지원에 집중한 결과다.

 

우리도 난민들을 환영하고 받아들여 자신의 적성에 따라 일할 기회를 준다면, 더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호택 (사)피난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