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항일 독립운동사의 숨은 주역 '최운산 장군' 재조명
[국방] 항일 독립운동사의 숨은 주역 '최운산 장군' 재조명
  • 양윤성 인턴기자
  • 승인 2018.07.05 20: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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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최운산 장군 순국 73주기 추도식' 열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항일 독립운동가 최운산 장군을 기념하는 추도식이 열렸다.                                   ⓒ코리아트리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항일 독립운동가 최운산 장군을 기념하는 추도식이 열렸다.                                   ⓒ코리아트리뷴

 

[코리아트리뷴=양윤성 인턴기자] 2018년 7월 5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만주무장독립전쟁의 주역이었던 최운산 장군의 순국 73주년을 기념하는 추도식이 열렸다.

 

국가보훈처와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후원으로 사단법인 최운산 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최운산 장군 순국 73주기 추도식'은 우리나라 무장독립운동사의 숨은 영웅으로서의 최운산 장군을 돌아보는 약사 보고로 시작해 추모시 낭독, 합창, 추모공연 등을 진행했다.

 

간도 연길에서 태어난 故 최운산 장군은 친형 최진동 장군, 친동생 최치흥 선생과 함께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유린한 일제의 만행에 맞서 무력투쟁을 통한 국권회복에 목숨과 전 재산을 내놓기로 결의하고 1910년 만주 봉오동으로 이주해 '신한촌'을 건설했다. 또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의 전진기지를 만들고 중국군에 있었던 우리 군인들을 인솔해 와 애국청년을 결집한 최운산 장군은 봉오동에 사관학교를 설립,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민족정신을 함양토록 교육하면서 독자적인 항일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했다. 

 

▲최운산 장군 유족대표와 원로내빈이 헌화와 분양 후, 추모시 등을 낭독했다.               ⓒ코리아트리뷴
▲최운산 장군 유족대표와 원로내빈이 헌화와 분양 후, 추모시 등을 낭독했다.               ⓒ코리아트리뷴

 

▒“잊혀진 호국의 혼”

 

이후 1919년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으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주권국가임을 선포하자, 이에 맞춰 최운산 장군은 1912년부터 양성한 약 670여명의 자위대인 '도독부'를 모체로 대한민국 독립군부대 <대한군무도독부>를 창설했다. 또한 자신의 소유지인 왕청현 서대파를 내놓아 <북로군정서>를 창설하고, <사관연성소> 설립을 주도했다. 1920년에는 흩어진 북만주의 독립군단체를 연합해 통합독립군단 <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하고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무기와 군비를 제공했다. 대한민국 독립군은 이를 기반으로 항일 전쟁을 치를 수 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제는 보복 조치를 시작했고 봉오동의 독립군 기지는 파괴됐다. 최운산 장군과 많은 독립군의 가족들이 고초를 겪어야 했다. 최운산 장군은 일제의 만행인 경신학살과 자유시참변으로 수많은 독립군 동지를 잃는 고통 속에서도 계속 무장독립투쟁을 이어나갔다. 그 이후 모두 여섯 차례 투옥됐으며 1937년 보천보 전투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다. 또 1939년 창씨개명 거부와 독립군 군자금 조달 혐의로 다시 10개월간 투옥되는 등 힘겨운 항일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최운산 장군은 결국, 1945년에 고문에 의한 신병으로 순국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70여년 동안 잊혀졌던 故 최운산 장군의 업적은 지난 2016년에 '최운산장군 기념사업회'가 출범한 뒤, 유족회와 연구학계를 중심으로 업적 발굴 및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아울러 많은 언론이 최운산 장군을 재조명하면서 그동안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을 바로잡고, 오랜 시간 잊혀졌던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국가보훈처가 최운산 장군을 독립군 장군의 예우로 예포를 발사해 기념했다.   ⓒ코리아트리뷴
▲이날 추모식에서는 국가보훈처가 최운산 장군을 독립군 장군의 예우로 예포를 발사해 기념했다.   ⓒ코리아트리뷴 

 

 故 최운산 장군 (1885 ~ 1945) 

1885 : 길림성 연길현 국자가에서 출생

1908 : 중국군 동삼성 보위단 군관간부로 임관 

1910 : 최운산 일가 4대 봉오동으로 이주, 동포들과 신한촌 건설  

1915 : 간도지역 독립군 기반 확립을 위해 독립군 부대 <도독부> 창설 및 봉오동 기지건설 

1920 : 온성군 풍리동, 풍교동, 남양동에 주둔한 일본 헌병대 및 경찰서 습격(국내진공작전)

1920 : 독립군단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후 6월, 봉오동 전투에 참전해 대승 

1930s :  자유시 참변 이후 지속적인 독립군 양성 및 대전자령 전투 등 무장투쟁을 지속함

1945 : 고문에 의한 신변으로 순국 

 

 

양윤성 인턴기자 forcebewithu@k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