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창훈 아나운서, "장애인 차별 없는 시대 곧 올 것"
[인터뷰] 이창훈 아나운서, "장애인 차별 없는 시대 곧 올 것"
  • 박경준 기자
  • 승인 2018.10.15 1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창훈 아나운서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경준 기자
 ▲ 이창훈 아나운서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경준 기자

 

[코리아트리뷴=박경준 기자] 지난 2018년 2월, 온 국민이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열광했다. 설 연휴와 겹친 일정에 외국 선수단과 취재진 등도 한국 최대 명절을 함께 하면서 떡국과 전통 한국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한식 한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최초의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줬고, 썰매 종목의 불모지였던 아시아와 대한민국에 최초로 금메달을 안긴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설날 당일 아침에 국민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최강의 모습을 보여준 쇼트트랙과, 이상화 선수의 스피드 스케이팅 질주, 컬링을 단박에 국민적 스포츠로 급부상시킨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의 투혼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더욱 빛나게 했다.

올림픽마다 개막식 전까지 펼쳐지는 성화봉송 레이스 이벤트에도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데, 올해는 그 가운데 대한민국 최초의 시각장애인인 이창훈 아나운서도 있었다.  

 

서울 종로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이창훈 아나운서(32)를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 최초의 장애인 아나운서로 잘 알려져 있는데, 간단히 본인 소개를 한다면?



저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으로 시력을 잃어 가족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지난 2011년에 있었던 KBS 장애인 앵커 공채로 523대1이라는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해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KBS 아나운서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지금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KBS 제3라디오와 KTV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특히 야구를 좋아해 팟캐스트에서도 '주간 야구 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LG트윈스 팬이고, 나름 야구 애호가입니다. 이 외에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병행하면서 비장애인들의 '장애 공감 교육' 등으로 여러 기관에 강연을 나가고 있습니다.

 

▲ 지난 1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이창훈 아나운서가 성화를 봉송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준비위원회
▲ 지난 1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이창훈 아나운서가 성화를 봉송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준비위원회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는데.



그렇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로 초청받아 지난 1월 15일에 성화를 들고 서울 강남역 사거리를 200M쯤 달려 다음 주자에게 전달했습니다. 성화는 올림픽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올림픽마다 시작 전 이벤트로 지구촌을 돌아온 성화 불꽃을 개최국의 개막식 날까지 성화단으로 봉송하는 의식을 행한다고 합니다.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도전, 최선을 다하는 열정, 전 지구적인 모두의 축제 등 올림픽 정신에 걸맞은 인사를 초청한다는 기준이 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참여하게 된 계기와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



우선 시각 장애인으로서 빛을 잃은 제가, 환하게 빛나는 올림픽 성화 불꽃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매우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뉴스로만 전했던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실제로 어떻게 뜨거운 불꽃을 전달한다는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이번 경험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도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올림픽 성화봉송에 참여하는 개인적인 동기부여가 생겼습니다.  
 

다만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이어서 열리는 패럴림픽에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항상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에서는 패럴림픽에도 큰 관심 가져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전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성화봉송을 하면서는 사람들이 '빛과 그림자'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데, 우리는 주로 밝은 빛만 보면서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기 종목인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팅에만 관심이 쏠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메달권 아래에 있는 선수들에 관한 관심, 추운 곳에서 떨면서도 선수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스텝들에 대한 감사함을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 평창 올림픽에서도 그동안 잘 몰랐던 비인기 종목인 스켈레톤이나 컬링이 좋은 결과를 내고 국민을 기쁘게 했는데요. 이처럼 묵묵히 그림자처럼 뒤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온 선수들에 대해서도 더욱 큰 관심과 격려, 응원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문화로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무거운 얘기를 좀 해볼 텐데요, 최초의 장애인 방송 아나운서로서 필연적으로 다른 장애인들의 롤모델일 수밖에 없다는 부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매우 책임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최고의 기록은 언젠가 바뀌지만, 최초의 기록은 영원히 기록된다'는 말을 자주 떠올리면서 명심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아나운서 등 언론인을 꿈꾸는 장애인들에게는 아무래도 제가 롤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해보면 다소 즉흥적으로 아나운서에 도전을 결심했지만, 그 과정에서 저도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최초의 장애인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제 뒤를 이어 장애인 아나운서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온전한 정규직 고용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 부분에 관해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안정된 고용이야말로 당장 절실한 부분입니다. 

 


그동안 시각장애인 안마사 문제 등 양질의 장애인 일자리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혀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양질의 일자리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데, 시각장애인으로서 볼 때는 아직 아쉬움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생각해봐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마사고 교사나 사회복지사, 음악가, 종교인, 바리스타 정도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중 직업적인 안정성을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자격증을 허용하는 안마사가 유일합니다. 그런데 그런 안마사업조차 비장애인이 버젓이 불법 운영을 하는 현실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 수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이 문제를 두고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우선하는 문제가 맞다는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났는데도 현실에서는 불법 운영이 만연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장애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요, 장애인들에게는 사실상 생존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단속할 의지조차 없었다는 게 시각장애인들의 생각입니다. 장애인들의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지 않은 기존 양질의 일자리 구조를 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장애인 양질의 일자리에 신경 써 주시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양질의 장애인 일자리에 관해 그동안 생각해 온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씀드린 미디어 산업의 장애 감수성을 갖춘 인재를 뽑아 조직의 장애인식을 개선하는 방안 외에도, 평소 제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생각해 온 부분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마을 안마사'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요즘 정책적으로 마을 단위로 변호사, 세무사 등이 배정돼 주민들의 편의가 크게 개선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해 마을 안마사 제도를 만들고 어르신들께 찾아가는 안마 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아울러 노인정 등을 통해 의료지원을 하는 제도와 연계하면 안마 서비스를 통해 정부 정책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각급 학교에 보건 선생님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안마사 선생님을 두면,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장애인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장애인에 관한 편견을 없애는 좋은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장애인 고용률과 관련해 의무고용을 반드시 지켜야 장애인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방송계에서도 장애인 아나운서를 기간제가 아닌 정규직 정원으로 늘려 꾸준하게 미디어를 통해 비추는 것이 국민에게도,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A+ 페스티벌에서 이창훈 아나운서가 연설하고 있다.          ⓒ이창훈 아나운서SNS
▲ A+ 페스티벌에서 이창훈 아나운서가 연설하고 있다.  ⓒ이창훈 아나운서SNS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비장애인조차 일자리 위협을 받는 상황인데?



평소 IT 분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로 아이폰 등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쉽게 모바일로 이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은 오히려 우리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매우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AI 스피커가 매우 활용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음성으로 AI 스피커와 대화해서 길을 찾고 음악을 듣는 등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게 잘 쓰는 사람들이 바로 시각장애인들입니다.

또 자율주행 자동차와 무인주차 등의 기술이 보편화하면,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이동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셈입니다. 만약 기업에서 그러한 AI 스피커를 개발-테스트하는 전문 인력으로 시각장애인을 고용한다면,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양질의 장애인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장애 인식 개선 관련 강연도 한다고 했는데, 개선이 필요한 이유와 개선 방법이 있다면?



일단 미디어와 언론이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에서 아쉬움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일상생활이나 주변에서 장애인을 직접 만나기보다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만큼 장애인에 관한 인식은 미디어를 통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미디어는 장애인을 크게 잘났거나 불쌍하거나 두 가지 프레임으로만 나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가 있는 천재라든지 혹은 장애가 있어서 불쌍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로 나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대다수 사람이 장애인을 만났을 때 두 가지 유형에 맞춰 생각하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장애인식이 잘못된 대표적인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장애 감성을 가진 다수의 인재가 미디어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 분야 현장에서의 장애 공감 교육이나 장애 인식 개선 교육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보는 시각이 변화할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단발성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꾸준하게 계속해서 다루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KBS 제3라디오 (수도권 104.9MHz)'에서 진행하는 '이창훈의 행복뉴스'에서 장애 공감과 장애 인식 개선과 관련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존의 문법을 깨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보통 장애인은 의학적으로 구분하는 장벽을 경험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시각장애인, 귀가 들리지 않으면 청각장애인 등으로요. 그런데 지금은 사회가 친 장벽 때문에 사회적 장벽까지 경험해야 합니다.

 

'교통약자', '정보 소외 계층'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처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통념이 여러 가지 장벽을 또 만들어 내 수많은 사회적 장애인들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앞으로는 그동안 만들어 온 많은 장애의 벽을 하나씩 모두 깨나가는 우리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박경준 기자 pkj@k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