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해소의 새로운 해법, ‘중향평준화’
격차해소의 새로운 해법, ‘중향평준화’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16.10.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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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혁파야말로 '애국(愛國)의 길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코리아트리뷴=기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알고 보면 참 별난 나라다. 여러 면에서 별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등주의'도 참 유별나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사회주의 나라 중국 사람들은 지독한 자본주의자들이고 자본주의 나라 한국 사람들은 뿌리 깊은 사회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배금주의(拜金主義)는 유명하다. 거기다 중국 사람들은 그 사회의 엄청난 빈부 격차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돈 많이 벌고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평등주의와 그로 인한 질시의 감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서 국민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를 찾기도 한다. 또 신분 질서의 잔재도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보다 훨씬 전에 근대화된 영국 같은 나라도 여전히 왕족과 귀족이 있고, 중산층 부르주아지와 노동자계급 프롤레타리아트의 구분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영국만큼은 아닐지라도 일본도 전근대적인 신분 질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양반의 후예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독특한 나라다. 따지고 보면 한국 사람들의 이런 평등주의는 유럽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와 다른 점이 있다. '함께 살자'는 연대(連帶, Solidarity), 혹은 형제애(兄弟愛, Fraternity)가 배제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사람들의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형제애와 연대의 정서가 바탕에 있지만, 우리나라는 계급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아마도 그런 의식과 정신문화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엄격하게 따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한 평등주의는 유럽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와 차이가 크게 나기도 한다. 강력한 개인주의, 자유주의와 결합한 평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미국의 리버럴리즘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토록 평등주의에 집착하게 됐는가? 우리 민족은 원래 불평등에 특별히 민감한 유전자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 뿌리를 캐다 보면, 우리나라가 건국한 시점의 농지개혁이 나오고, 경험했던 처절한 한국전쟁의 체험이 나온다. 더 깊이는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양반 귀족이 철저히 몰락해 신분 질서가 무너졌던 역사가 나온다.

 

한국 전쟁 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운이 좋게도 신분 질서의 잔재가 깨끗이 청소되고, 지주와 소작농의 아픈 기억도 사라진 나라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그 맹렬한 평등주의는 바로 이런 평등한 현실로부터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구대륙 속의 신대륙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무리 철저한 혁명을 거친 나라라도 미국을 비롯한 신대륙처럼 전통과 신분 질서의 잔재가 사라진 나라는 없는데, 우리나라만은 예외가 아니냐는 것이다.

 

 


◆ 대한민국이 받고 있는 도전, '불평등'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불평등의 심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평등을 자신의 유전자로 하는 대한민국이 불평등의 도전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물게 평등한 나라였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 어쩌면 지금까지 모든 국민이 해야만 했던 너무 치열한 경쟁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래 우리에게 있었던 평등의 유전자를 되살려내야 한다.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하지만 '연대'라는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여 정신문화와 생활 방식을 북유럽식 '노르딕 모델'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원칙'에 따라 모두가 적은 액수라도 소득세를 내고, 고소득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서 복지제도를 강화하는 한편, 일차적 분배, 즉 임금과 소득의 평준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것은 제2의 농지개혁과 같은 것이고, 성공한다면 한국은 다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표1]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이 전체의 45%나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다. OECD 가입국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소득의 양극화가 극심한 나라는 미국 정도다. 이는 곧 대기업,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과 교사의 임금과 연금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중소기업, 하청기업의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와 자영업자에게 고용된 노동자의 임금-소득과 연금은 너무 낮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전 국민의 무한경쟁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승자독식으로 점차 변해가는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상위 10%와 하위 90%의 국민으로,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되고 있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정작 노동조합의 보호가 필요한 하층 노동자들은 대부분 무노조의 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노동시장의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데, 공기업,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과 교사 등은 강력한 노조의 보호 아래에 있다는 현실도 풀어야 할 숙제다. 더구나 기피업종이라는 이른바 3D업종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이 무제한 공급되고 있다. 대학진학률 80%의 나라에서 청년들은 3D업종에 취업하려고 하지 않았다. 눈앞의 단기적인 필요만 본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공급은 필연이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수출 대기업은 조선, 자동차, 기계, 철강, 석유화학, 전자, 휴대폰,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성장해왔다.대기업에서는 노동조합이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지속적인 임금인상과 기업 복지 확대도 이뤄졌다. 하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 기업들은 그렇지 못했고, 납품 단가는 점점 하락했으며 하청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도 상대적인 가격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아래 [표2]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표2] 광주 기아차 노동자 임금격차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 양극화 해법으로 새롭게 떠오른 '중향평준화' 논의

 

최근 정치권에서 '중향평준화'라는 낯선 말이 나왔다. 상향평준화는 불가능하고, 하향평준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니 중향평준화로 사회적 합의를 하자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광주시장이 추진하는 이른바 '광주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비슷한 세계 노동운동의 경험으로 '연대임금제'가 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대원칙도 있다. 결국, 모두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 교사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인식이 강하다. 양극화가 그만큼 심하다는 얘기다. 특히 그들 가운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상위 10%에 속한다는 현실 인식에서부터 그들의 임금과 연금을 줄여나가고,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과 연금은 올려서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줄이자는 '중향평준화'의 취지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연공서열 임금 체계를 직무, 성과, 능력 중심의 임금 체계로 바꾸자는 데에도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필자는 1987년 민주화 이전부터 노동운동의 뒤를 따랐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확대하는 데 오히려 일조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항상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왜 그렇게 됐는가를 거듭 반성, 사색하고 있다. 그래서 세간에서 비판하듯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라는 앞선 두 세대의 노동운동이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면, 차세대 노동운동이 탄생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위선적이고 반동적인 집단이 됐다면, 북을 치면서 그들을 공격하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젊은 시절 우리는 노동운동에 사회주의라는 정신을 접목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 우리를 '빨갱이'로 오인해 탄압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생각의 공안검사들이 했던 탄압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때문인지, 한국의 노동운동에는 사회주의라는 소울(Soul)이 접목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동운동은 특이하게 행태는 전투적이지만 철학은 빈곤하고, 단기적이고 협소한 조합원의 이익 외에 추구하는 가치는 없었다. 그 결과, 이른바 '열사(烈士)'를 그토록 많이 배출했지만 그럴수록 국민의 존경과 도덕적 영향력은 점점 멀어져 갔다.

 

'차세대 노동운동'은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하층의 노동자들이, 또 새로운 세대 청년들이 스스로 단결해 새롭게 사회정치적인 힘으로 등장하려는 꿈틀거림이다. 1세대 한국노총, 2세대 민주노총에 포섭되지 않는 제3세대, 차세대 노동운동에 대하여 정부와 언론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흡사 뉴딜정책 시절 루스벨트 정부가 '와그너 법'을 만들어서 노동조합 조직률을 40%까지 끌어올려 미국 현대사의 대전환을 이룬 것과 같은 국가적 과제다. 정부는 노동조합을 받아들이는 중소자본가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원을 해 중소기업가들이 노동조합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는 없는가?

 


◆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혁파야말로 '애국(愛國)'의 길

 

우리나라는 본래 '자유와 평등의 나라'로 건국됐다. 자유와 평등은 대한민국의 유전자였다. 그러므로 평등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흔히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그 역동성, 그 다이내믹스(Dynamics)는 어디서 왔는가? 평등, 특히 기회의 평등에서 왔다. 기회의 평등이 흔들리자 바로 청년들 사이에서 '수저론'이 나왔다. 그리고 '헬조선론'이 나왔다. 절망이란 이야기이고,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평등의 가치는 먼 나라에서 가지고 온 이야기가 아니다. 평등이란 가치는 우리나라 정치권을 양분하고 있는 현재의 진영 구도를 넘어서서 매우 깊은 문화적 뿌리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새롭게 가지고 와야 할 것은 '연대(Solidarity)'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은 다시 평등한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제2의 농지개혁'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이루어진 지금은 농지개혁보다 훨씬 복잡한 조치들이, 말하자면 미국 현대사를 연 '뉴딜정책' 같은 대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 핵심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혁파가 있다. 이런 대개혁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더 진화해야 한다고 본다. 보수진영은 이른바 '귀족노조'만 공격해 그들의 양보만 받아내면 될까? 수년간 그렇게 하고 있지만, 큰 효과가 없지 않은가? 중향평준화론도 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리라 믿는다.

 

진정으로 무언가 이루고자 한다면, 보수진영이 스스로 자신의 지지 기반이라고 여기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어느 정도는 배반해야 하지 않을까? 보수진영이 먼저 주장해 외국인 노동자의 수를 적절히 통제하고, 불법체류자를 철저히 단속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3D업종과 건설 현장의 임금이 지금보다 오르도록 하면 안 될까? 대신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중소-하청기업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대기업의 임금도 자연히 어느 정도 내려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중소기업에 유리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또 강력하게 적용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실질적인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는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한편, 진보진영도 조금 더 진화해 지금의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노동조합을 배반해 재벌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국민이 바라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고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득할 수 없는가? 우리는 흔히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나 네덜란드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보다 더 강한 산업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얼마든지 그런 나라보다 좋은 나라를 만들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 다만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 쉽게 말해 벽돌공과 의사의 소득 격차가 이렇게 커서는 희망이 없다.

 

이렇게 조금씩 서로 양보해 나간다면 오래지 않아 다시 IMF 구제금융 사태 이전으로, 1980년대 이전의 평등한 나라로, 기회의 평등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청년들이 하청 중소기업과 건설 현장의 일자리에도 마음 편히 취업할 수 있다면, 청년 일자리도 훨씬 늘어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달려오던 방향으로 계속 갈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것 같다.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장년과 청년이, 그리고 정치가, 사회운동가, 언론인 등 모든 방면의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