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권의 문화·예술 돋보기] 도래한 '영상의 시대', 영상물 등급분류 제도 기준 개선해야
[김희권의 문화·예술 돋보기] 도래한 '영상의 시대', 영상물 등급분류 제도 기준 개선해야
  • 김희권 문화예술학 박사
  • 승인 2019.01.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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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영상물 속 '필요악 기준?', '청소년 보호' vs '표현의 자유' 사이 줄타기

 

[코리아트리뷴] 바야흐로 텍스트보다 영상물 중심의 시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때 포털사이트보다 유튜브를 먼저 검색한다. 그만큼 개인이 영상물을 제작하는 일도 매우 쉽게 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며 멀리하려던 때가 있었는데, 그리 오래지 않아 세상이 빠르게 변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많은 영상물을 다루는 제도가 있다.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연령대를 정하는 등급분류제도다. 영화·비디오·영화의 예고편·광고·광고성 영화·광고 선전물 등이 그 대상이다. 이러한 등급분류 업무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담당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영상물 등급분류가 5단계로 이뤄지는데 '전체 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 불가', '제한상영가' 등이다. 여기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전용 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영화로 현재 상영 중인 곳은 없다.

 

특히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영상물 종류는 ‘영화’인데, 사실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느냐 혹은 없느냐'의 두 단계 등급으로 나눠진다. 이는 현실적으로 ‘12세 이상 관람가’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영화는 그 나이에 도달하지 않은 아이들도 보호자가 있다면 함께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상영관에 가보면, 보호자와 함께 온 미취학 아동들조차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는 청소년이 절대로 볼 수 없는 것일까. 일단 청소년이 시중 상영관에 입장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터넷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PC로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요즘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정작 내 입으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 때문에 영상물 등급분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무리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도 청소년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구해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인데, 실효성 없는 옛날 방식의 제도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기술의 발달이나 권리 의식이 신장하는 현실에 발맞추지 못하는 구닥다리 제도는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처럼 등급분류 제도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영상물을 통한 다양한 표현'이라는 가치는 청소년도 충분히 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워낙 똑똑하고 조숙해지는 아이들에게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청소년 권리보다 보호를 논하느냐'는 주장을 듣는다면 반박하기조차 쉽지 않다.

 

 

물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적 가치이자 매우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계속 확장 중이다. 대법원은 "자유로운 토론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면서, 부당한 표현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에 무조건 법적 책임을 부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8.10.30. 선고 2014다61654 전원합의체 판결).

 

그렇다면 청소년은 영상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영상물 등급분류 제도는 입법 취지에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현행법 중에는 '청소년보호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청소년을 보호의 객체로 보는 법령이 다수 존재한다. 교육이나 발달 분야에도 청소년 보호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 일정한 보호망 없이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시기로 판단해 보호한다. 그만큼 청소년 보호에 관한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학술 이론적으로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표현의 자유 보장' 또는 '청소년 권리 신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어떤 제약도 없이 모든 영상물을 청소년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에는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실제로 폭력성 요소가 매우 많은 영상물이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 사람을 칼로 찔러 피가 흥건한 장면이 다수 나오는데도 '청소년 관람 불가(청불)' 등급을 피한 사례도 있었다. 이 사례에서는 단지 몸이 직접 흉기에 찔리는 과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불 등급을 피했다. 즉 영상에서 사람을 칼로 찌르려는 장면이 나오다가 칼이 몸에 닿는 순간, 칼에 찔린 사람의 뒷모습만 보이도록 화면을 전환했다. 그 후 칼에 찔린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에서 화면 가득 선혈이 낭자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과연 등급분류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록 현실적으로는 제재 기준을 피해갈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할지라도 안전장치가 될 최소한의 기준은 마련해야 한다.

 

지난 2018년 12월 28일,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및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음악영상물과 음악영상파일을 제작·배급할 때는 사전에 등급분류를 받게 돼 있는데, 음악 산업의 특성상 음원 발매와 동시에 홍보해야 하고 그 유통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우선 제작·배급업자가 자율적으로 등급을 분류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그 등급분류가 적절하지 않을 때만 재분류하는 방식이다.

 

▲ 영상 중심 SNS 사이트 이용이 늘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생 등 영상물 콘텐츠 주  이용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추세다. (출처:유튜브 홈페이지)
▲ 영상 중심 SNS 사이트 이용이 늘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생 등 영상물 콘텐츠 주이용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추세다. (출처:유튜브 홈페이지)

 

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보완점이 남아 있다. 제도적으로 청소년을 보호의 객체로 보기 시작하는 나이를 몇 살부터로 볼 것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른 여러 가지 법령을 봐도 청소년으로 보호해야 할 연령 기준에는 일관성이 없다. 또 많은 청소년 관련 단체가 청소년 인권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며 선거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추자는 이슈조차 아직 논란이 매우 뜨겁다. 다만 영상물 관람 기준과 관련해서는 이른 시일 내로 누군가는 일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데아를 꿈꿨던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국가론을 설파하면서, 그 주체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내용은 최소한 교육과정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기준과 체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논란이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를 위한 하나의 기준은 세워야 한다. 영상물 등급분류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에 단계가 있듯, 영상물 관람에도 청소년이 볼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당장은 금지하더라도 조금 더 성장한 후에 보도록 권장할 내용이 있다. 물론 많은 청소년 중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도적·관리적 측면에서 다수의 청소년기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영상 콘텐츠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하루 새 쏟아지는 영상물은 점점 더 기하급수적이다. 이에 관한 건설적인 논의가 시급하다.

 

 

김희권 문화예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