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길거리 벤치가 가지는 의미
서울의 길거리 벤치가 가지는 의미
  • 박경준 기자
  • 승인 2013.01.15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코리아트리뷴=박경준 기자] 서울에서 오랜 기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요즘 공감할 부분이 한 가지 있다. 길을 걷다가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는 동안 서울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공공 벤치는 이제 일부러 찾지 않으면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길거리의 벤치는 그 길만의 특색 있는 공간이 되어 산책을 나온 노부부가 손잡고 추억을 나누는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고, 어린 연인들에게는 풋풋한 첫 키스의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치는 임산부나 노약자에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중한 중간 지점이 되어 주었다. 그뿐인가 예술가들에게는 공연의 무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심지어 날이 따뜻한 계절에는 노숙인들의 집이요 침대 역할까지 하던 '누군가의 공간'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서울 시민이 이토록 멸종에 가까울 정도로 길거리에 있던 벤치를 없애주기를 원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서울의 주인이라는 시민에게 제대로 의견을 물어본 적은 있었을까? 그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었을까? 짐작키로 오로지 경제적인 논리에 따른 철학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벤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길을 걷다 잠시 쉬고 싶다면 돈을 내고 커피숍에 들어가 장소 값을 치르는 것이 마땅할 테니까. 그런 논리로 바라보면 서울시의 모든 거리의 벤치와 그 주변의 자판기 등은 내수시장 내지는 경제성장의 걸림돌인 셈이다. 덕분에 이제 많은 서울시민은 잠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도 반드시 비싼 커피숍에 들어가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한다.

서울의 길거리에 벤치 좀 없어진 것을 어째서 상인들의 이기주의와 경제적 효율만을 쫓는 공공 행정의 문제로까지 관련시키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SSM과 재래시장 문제 등으로 불거진 사회의 주요문제 중 하나가 바로 '상생'이다. 어려운 형편에 길에서 풀빵 장사를 하려고 해도 '당장 먹고 죽을 돈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그런 어려운 장사를 하루하루 이어가는 소상공인들이 계속 장사로 먹고살며 '생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터전만큼은 남겨두자는 것이 바로 '상생'의 취지다. 하지만 길거리서 풀빵장사를 하고 싶어도 일단 '거리 미관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디자인이 멋진 노점박스'를 살 수 없다면, 시작조차 하기 쉽지 않은 게 지금의 웃지못할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이유에선지 길거리에 있던 벤치마처 종적을 감춘다면, 한번 쯤 진지하게 공공장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을 정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창업에 관한 이야기로 더 나아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업자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들 또한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처럼 처음에는 무엇인가 시작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비싼 장소에서 시작하기보다 결국 집의 차고와 잔디마당을 이용했다. 또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품에 대한 시연과 조사를 하고, 그 의견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값비싼 공간 때문에 시작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제도가 턱없이 모자란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놓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게 거리의 벤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면, 과연 그들이 뭐라고 대답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물론 노점상인과 벤치, 자판기를 상업적, 법률적, 행정관리의 관점으로 따져보고 과세를 통한 나라재정의 세수 창출, 기존 상권의 보호 측면 등을 문제삼는다면, 관리가 어려우니 차라리 없애버지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그동안 다양한 의미로 거리의 벤치, 나아가서는 공공장소를 대표하는 공간과 기물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공간이자 기물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 어릴 적엔 동네 어귀 평상에 모여앉아 모시옷에 부채를 쥐고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근처에서 얼마든지 해 질 무렵까지 또래 친구들끼리 맘 놓고 뛰어놀 수 있었고, 옆집 밥상에 숟가락이 몇 개이고 동네 구성원에게는 요즘 어떤 대소사가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모두 알 수 있었다. 그처럼 동네 공공장소인 평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나누시는 이야기들은 노인이라고 소외당할 일이 없도록 해줬고, 오히려 인생 선배로서 동네 대소사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살면서 어려움에 처한 동네 구성원에게는 어떠한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가르쳐주는 인생 선배이자 스승일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요즘처럼 CCTV가 넘치는 때에도 아파트 옆 호수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혼자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어르신의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종종 접한다. 또 내 아이가 거리에서 뛰놀면 혹시라도 유괴를 당할지 모르니 밖에서는 절대 뛰어놀지 못하도록 해 어린 아이 입에서 학원이 아니면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푸념이 일상이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동네 어귀 평상에서의 이런 소소하지만 위대하고 자연스러운 어르신(사람)의 역할을 CCTV 등 기술이 손쉽게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조차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조금 더 창조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서울의 길거리 벤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경준 기자 pkj@ktribune.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