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평생직업' 개념 사라지고 '춘추전직(轉職) 시대'로
[기자수첩] '평생직업' 개념 사라지고 '춘추전직(轉職) 시대'로
  • 박경준 기자
  • 승인 2018.05.30 2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가지 재주 있는 사람만 밥 안 굶는 시대

[코리아트리뷴=박경준 기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노동'과 '일자리'는 어느새 한국 사회의 주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대기업, 중소기업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정규직', '비정규직' 등 노동 용어를 사용하며 노동이슈에 대해 얘기한다. '노동'자만 들어도 기겁을 하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직'과 '전직'의 차이조차 모르는 직장인들이 너무 많다. 매일 같이 입버릇처럼 '사표를 던지고 싶다"며 혀를 차는 직장인도 정작 '이직'과 '전직'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면 그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두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전직(轉職)'은 '직업이나 직무를 바꿔 옮긴다'는 뜻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분야의 회사로 적을 옮겨 일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편 '이직'은 그 한자에 따라 의미가 다른데, '이직(離職)'의 경우는 '직업을 잃거나 직장을 떠난다'는 뜻으로 실업자가 된다는 말이며, '이직(移職)'의 경우는 '직장을 옮긴다'는 뜻으로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경우를 말한다. 쉽게 말해, 다른 회사로 옮겨서 같은 분야의 일을 하면 '이직했다'고 표현하고, 회사를 옮겼는데 직업을 바꾸는 등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경우에는 '전직했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제는 이와 같은 두 용어의 차이에 대해 모르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그만큼 일자리 구조와 생태계가 크게 바뀔 조짐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자리도 나눠야 할 만큼 양질의 일자리는 적고 일해야 하는 사람은 많다. '적자생존', '각자도생'을 외치며 이직과 전직을 반복해야만 하는 시대가 됐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를 두고 어느 '전직' 전문가는 '춘추전직시대'가 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2018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되면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실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정규직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일자리 성격 자체의 변화 또한 점점 더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기업이 필요할 때 요청하면 잠시 일을 하다가 그 분야의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종류의 일을 찾는 프리랜서 형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혼자서도 다양한 분야의 일을 섭렵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요가 많고 전망 있는 분야를 쫓아 전직의 형태로 업무 분야를 여러 번 바꾸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많지 않은 고정급을 받으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보다, 프리랜서 형태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시급 혹은 계약금을 여러 번 받는 것이 경력과 금전적인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이 이유다. 게다가 같은 수준의 월급을 벌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복지가 좋지 않은 중소기업 직장인의 경우, 프리랜서 형태로 전환해 스스로 휴식과 복지를 챙기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이유다. 옛말에 "12가지 재주 있는 사람이 밥 굶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12가지 재주 있는 사람만 밥 안 굶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의 코스타스 마키데스(Costas Markides) 교수는 평생직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실제로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의 코스타스 마키데스 교수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현재 18세인 아이들이 40세가 됐을 때는 평균적으로 10~14개 정도의 직업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더니 오래지 않아 '평생직업'의 개념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IMF 시기가 비자발적 퇴직으로 인한 전직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는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전직을 결정하는 진정한 '춘추전직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와 같은 '춘추전직시대'에서는 첫 직장을 대기업으로 삼기 위해 청년들이 재수, 삼수, n수를 하는 세월 낭비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예상대로 흐른다면, 우선 중소기업에 취직하고 '이직과 전직의 사다리'를 통해 더 나은 곳을 찾아 대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이고 우수한 직원일수록 여러 기업에서 찾을 것이고, 일할 기회도 그만큼 더욱 여러 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마키데스 교수는 "이제 기업은 우수하고 창의적인 인력을 새롭게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떠 안게 됐다"며 "인재들을 얼마나 잘 유지해 회사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직과 전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구시대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당장 IT업계처럼 이직과 전직이 빈번한 산업 분야에서조차 핵심 기술을 가진 특수 인력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동종업계 이직 금지' 규정을 일반 사원에게까지 악용해 이직과 전직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직 과정에서 서로 조금만 불편해져도 기업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많다. 이직과 전직을 위한 텀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힘겨운 생활고를 겪는 등 이러한 상황을 견뎌내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해외 선진국을 보면, 캐나다에서는 이직을 위해 잠시 실직 상태에 놓이면 주 정부가 바로 지원금부터 주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 또 전직과 이직을 돕는 지역 내 커뮤니티도 활성화돼 있어, 같은 업계 종사자끼리는 이직 정보를 나누고, 네트워크 또한 잘 형성돼 있어 전직에 성공한 사람들은 전직 준비자들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서도 전직과 이직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소위 '이직과 전직의 사다리'가 풍부해 양질의 일자리로 쉽게 연계할 수 있도록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구시대적인 배신자 논리에서 벗어나, 전직과 이직을 인재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해당 인재가 꼭 필요하다면 그만큼 더 나은 대우를 통해 붙잡으면 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직과 전직은 이제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100세 시대가 열린 오늘날, 평생 한 가지 일만 하거나 한 곳에서만 일 하게 될 확률은 극히 낮다. 정년퇴직 이후의 전직 역시 예외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이직과 전직의 순간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계속 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국민 개인 차원을 넘어 정부 차원에서도 정책적 '춘추전직시대'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박경준 기자 pkj@ktribune.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