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 모두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 한류 법령'으로
[기자수첩] 국민 모두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 한류 법령'으로
  • 박경준 전문기자
  • 승인 2018.05.1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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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의 세종대왕 동상 모습  ⓒ박진혁 기자 

 

[코리아트리뷴=박경준 기자] 2018년 올해에는 572돌을 맞는 한글날이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은 어떤 문자보다도 뛰어난 과학적 원리를 담고 있는,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글자다. 한글은 이제 음악의 가사로, 드라마 대본으로 전 세계적인 한류 붐을 타고 명실상부 그 중심에 있다. 그 위상에 맞게 한글날도 다시 국경일이 됐다.

 

다만 우리나라의 법률은 한글의 영향에서 아직도 멀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우리의 법률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법률은 이미 페루와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출돼 그 나라의 법을 새롭게 바꾸는 기준이 되고 있고, 지난 2009년에는 APEC 정상회의가 선정한 '계약분쟁해결' 분야의 법률 우수국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2000년부터 시작된 '법률 한글화' 사업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법률 한글화 사업'은 여러 차례 번역을 거쳐 국내로 도입 되는 과정에서 오염되고 왜곡된 부분을 순수 자국어로 바꾸고, 그 체계와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여러 나라가 특별히 주목을 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이 얼마나 법률체계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중국 법학 분야 최고수준으로 유명한 베이징 정법대학에서는 한국법연구소까지 개설해 우리 민법을 가져다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법률을 전면 한글화 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입법기관인 국회도 상징 문양과 의원 배지를 한글로 바꾸면서 법률의 한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법률에는 어려운 용어와 한자식 표현이 많다. 많은 국민이 우리 법을 어렵다고 느끼고, 용어를 어려워한다. 내용 이해는 물론이고 우선 읽기조차 힘들어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일본식 표기나 지나친 축약어, 어려운 한자나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법률용어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이 혹시 판결문이라도 보려하면 한 문장이 왜 그리 긴지, 심어 10쪽을 넘겨야 비로소 마침표를 발견하는 때도 있다. 우리와 다르게 영국이나 미국의 판결문은 일반인이 보기에 이해가 쉽도록 한 문장이 평균적으로 길어야 세 줄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법적인 글쓰기도 얼마든지 문장을 짧게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용어나 긴 문장은 물론이고, 너무 긴 법률의 이름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법조계의 위엄을 높이고 직업적인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한 그들만의 용어장벽 치기 혹은 관행적 악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의사들이 단순 소화불량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소화제를 처방하면서 진료서나 처방전에 환자가 알아보기 힘들도록 외국어로 의학 전문용어를 휘갈겨 쓰는 등의 관행과 같다. 많은 국민이 법률을 어려워하는 문제를 단지 유럽과 영미권에서부터 일본을 거쳐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생긴 '번역 왜 곡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법령의 한글화 사업을 통해 정비된 법률 사례를 살펴보면, '합의간주'를 '합의한 것으로 보는 경우'로 고치고, '징구하다'는 '내놓도록 요구하다' 혹은 '내게 하다'로 바꿔 쓰도록 했다. 그 외 장애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용어인 '정신병자'는 '정신질환자', '불구자'는 '장애인', '농아자'는 '청각장애인'으로 고치고,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식 용어인 '입장'은 '태도'로, '갑상선'은 '갑상샘', '가도'는 '임시도로', '기타'는 '그 밖에', '안검'은 '눈꺼풀'로 정비했다. 또 법령의 문장구조도 고쳐서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제외한다' 혹은 '예외로 한다'로 바꾸도록 했고, 이중부정문은 긍정문으로 바꿨다. '아주 좋은 것으로 보여진다'와 같은 겹피동 표현은 '아주 좋다'로 고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법령 수는 이미 4,000개가 넘고, 그 가운데 법률만 1,150여건이나 된다. 앞으로 계속해서 사례를 발굴하고 개선해나가야만 한다. 다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과 개념에는 으레 '헬조선-흙수저-국뽕'과 같은 일반 대중들의 신조어가 많이 생기지만 유독 법률 분야에는 많지 않은데, 그만큼 우리 법률이 어려워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률'은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력을 가진다. 특히 어렵고 읽기 힘든 법 문장을 잘 다듬어, 모든 국민이 쉽게 읽고 이해하며, 법을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령의 한글화는 국민을 위한 대중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세종대왕이 모든 백성을 위한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한글을 창제했듯, 우리 법률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용어나 문장을 더욱 쉽게 정비해야 한다. 당장 내 일터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내가 살 집을 계약하고, 돈을 들여 거래할 때, 매 순간 필요한 것이 계약이고 법률이다. 따라서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내용과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한자어나 영어를 써야만 품격이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예전에는 한자어나 일본어가 우리말을 잠식했다면, 지금은 영어가 우리말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한류 붐을 타고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지금은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시대를 넘어 외국인이 우리 한글을 배우는 한글 한류의 시대다. 음악과 드라마를 넘어 이제는 우리 법률의 한글화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은 나폴레옹 법전으로 글공부했다고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한글 법전을 자랑스러워하는 대문호가 나오지 않을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 법이 한글화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 법령으로 거듭날 때, 그것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고 우수한 '한글 한류 법령'이 될 것이다.

 

박경준 전문기자 pkj@ktrib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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