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기자의 인문학 산책] 도리천과 수미산, 그리고 우리 문화
[박경준 기자의 인문학 산책] 도리천과 수미산, 그리고 우리 문화
  • 박경준 전문기자
  • 승인 2020.12.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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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우주론을 나타낸 수미산도(須彌山圖).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의 꼭대기에는 도리천(忉利天)이 있으며, 도리천을 다스리는 제석천, 즉 환인(桓因)이 중앙에 위치한 선견성(善見城) 궁전에 산다는 의미를 담았다.

[코리아트리뷴=박경준 기자] '도리천(忉利天)'은 불교의 개념어로 우주의 사방팔방을 33명의 신이 내려다보며 삼라만상을 살피는 곳이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말하는 육욕천(六欲天) 중의 두 번째 하늘로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의 정상에 있으며, 제석천(帝釋天)의 천궁(天宮)이 있는 곳이다. 제석천(帝釋天)은 '환인(桓因)' 혹은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도 하며, 불교 우주론에서 도리천의 주인(왕)인 제석천(帝釋天)의 다른 이름이다. 불경에 따르면, 제석천(환인)은 수미산 정상 도리천의 선견성(善見城)에서 살면서 사천왕(四天王)을 통솔하고 인간계를 감시한다.

 

수미산 정상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마다 천인(天人)들이 사는 8개의 천성(天城)이 있다. 중앙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사는 궁전인 선견성(善見城)이 있는데 이를 모두 합쳐 총 33개의 천궁(天宮)이 있다. 그래서 도리천을 '33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도리'는 33의 음사(音寫)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한다. 즉 '33천'이라는 인도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번역한 것이 '도리천'인 것이다. 또 여기서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33천인 도리천은 33명의 신(神)이 사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摩耶)부인이 죽은 뒤 다시 태어난 곳이 바로 도리천이다. 이에 석가모니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기(雨期)임에도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석 달 동안 설법했다고 한다.

 

한편 도리천에 사는 '천인(天人)'은 신장이 1유순(由旬)이고 수명이 1000세이며,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00년과 같다. 이들은 남녀의 구별이 있으며 신체가 서로 접근하면 음기와 양기가 만나 아이가 태어난다고 한다. 아이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6세 아동과 같은 모습으로 이미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또 도리천은 뛰어난 누각·동산·연못·난간 등으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6재일(六齋日:매달 8·14·15·23·29·30일)'마다 천인들이 성 밖의 선법당(善法堂)으로 모여 법(부처님의 말씀)다운 일과 법답지 못한 일에 대해 서로 논의한다고 한다. 이때 지상에 있는 중생들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도 함께 다루며 논의하는데, 그래서 이를 믿는 사람들은 신의 판단을 받는 날로 여겨 6재일이 되는 날은 특히 계율을 잘 지키고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며, 하루 한 끼만 먹으려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도리천의 개념은 단순히 불교의 세계관에 그치지 않고 우리 문화 곳곳에 녹아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신라 시대 선덕여왕이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 때문에 선덕여왕 시기에 지어진 경주의 첨성대가 천문관측기구로 불교의 수미산 개념을 적용해 만들어진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조선 시대 때 과거시험의 문과 합격자 정원을 33명으로 했으며, 항일 운동 시기 기미독립선언서를 33명의 민족대표가 모여 서명하고 낭독했던 것 등 도리천(33천)의 개념과 의미를 담은 것이 많다. 지금도 우리는 매년 12월 31일 자정에 서울의 종각에 모여 보신각종을 33번 치며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 행사를 한다.

 

▲ 선덕여왕 시기에 지어진 경주의 첨성대(왼쪽)가 천문관측기구로 불교의 수미산 개념을 적용해 만들어진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진=국가문화유산포털)
▲ 선덕여왕 시기에 지어진 경주의 첨성대(왼쪽)가 천문관측기구로 불교의 수미산 개념을 적용해 만들어진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진=국가문화유산포털)

 

이 중에서 특히 제야의 종 행사에서 33번의 타종 의식을 치르는 것은 '도리천'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도리천(33천)의 천인은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기 때문에 밝아오는 새해 아침에 만백성이 그 천인처럼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 도리천을 다스리며 삼라만상을 굽어살피고 여러 신을 지휘하는 제석천(제석환인)이 우리나라를 세운 단군의 조상이므로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광명이세(光明理世)' 등의 이념에 따라 널리 선양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유교를 바탕으로 통치한 조선 시대에서도 ‘인·의·예·지’로 만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할 것을 도리천(33천), 즉 우주에 맹세하고 알린다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 종을 치며 그 의미를 기리는 것은 매일 시각에 따라 도성의 문을 열고 닫는 조선 시대 타종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새벽이 열리는 인(寅)시에 한양도성의 사대문을 여는 파루는 33번을 타종하고, 저녁 유(酉)시에는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상징하는 28번의 타종을 했다. 이 또한 불교의 우주관인 28계 33천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불교에서는 사찰을 건립할 때도 그 가람배치를 도리천과 수미산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찰에 들어서는 문인 일주문(一柱門)은 천상계를 넘어선 불지(佛地)를 향해 나아가는 자의 일심(一心)을 상징하고, 사천왕문은 수미산 중턱까지 올라왔음을 상징하며, 불이문(不二門)에 도달하는 것은 수미산의 정상에 이르렀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부처는 그 위에 있다고 하여 법당 안의 불단을 수미단(須彌壇)이라고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개념과 양식에 따라 지어진 해인사의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가 33계단이라는 것은 바로 도리천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쉽게 볼 수 있거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심코 지나치는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다. 도리천과 수미산 개념도 그중 하나다. 이를 단순한 불교적인 세계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속에 존재하는 오랜 역사와 문화로 흐르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널리 알려져 점차 깊이 있는 연구 등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박경준 전문기자 pkj@ktrib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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